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주위 사람들 목욕탕 가는데 따라 가거나 어디 시내에 뭐 사러갈 때 따라가고 그런 적은 있었죠. 제 옆의 동료들. 저는 [감시가] 없죠. 빚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선불금이 많아서 그렇다고. 나도 선불금이 그 당시에 적은 건 아니었는데. 내가 처음에 내가 조건을 그렇게 걸어서. 한번 집에 보내줬는데 약속을 어기고 없어지고 그랬으면 나도 그렇게 했겠죠. 그래도 약속을 잘 지키고 하니까 믿으니까 그렇게 했겠죠.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뭐 행운아였다 하지만 그래도 24시간은 항상 대기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고 그러면 사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수면제 없이는 자기 힘든 상황인 거고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또 다시 깼다 자다가를 반복해야 되는 상황이잖아. 점점 약이 독해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리고 제가 병원을 갈려고 하면 꼭 완월동 안에 주사이모한테 주사를 맞으라고 해요. 저는 병원을 가야겠는데, 병원 가는 것을 거부해요. 어떻게든 가게에 있어야 일을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주사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 안에 약이 뭐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주사이모? 맞았어요. 솔직히 내 마음대로 가는 거니까. 좀 이용을 했죠. 왜,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으니까. 보험 같은 것도 있잖아요. 내가 뭐 이런데 안 좋으면, 또 어떻게 보면 병원에 가면, 날벼락 소리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게 두려운 것도 있고. (음, 그걸 들을까봐? 두렵구나.) 두 가지가 있잖아요. 또 병원 기록에 너무 안 좋은 게 남으면, 보험혜택 받는 것도 그렇고, 그때는 참 무서웠어요. 그때는. (어떤 주사였어요?) 물어보면 이제 증세가 어떻대 하면 놔주거든요. 그 주사를, 엉덩이 주사. 피곤하면 ‘링거 놔 주세요’하면. 그니까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야매지만 간호사 출신이라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믿죠. 안 믿으면 못 맞잖아요. (그거 맞으면 몸이 조금 회복은 됐어요?)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제 우리가 받는 손님에 따라서 증세가 빨리 악화가 되니까. 솔직히 일주일동안 안 하고 푹 쉬어야 되는데, 그렇게 쉴 그게 안 되지. (중략) 믿어요. 안 믿으면 열 받아서 안 되니까, 부작용 나니까. 믿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는 말을 그렇게 하기도 그러니까. 저는 딱 2년간을 저동네에 있으면서 저기는 있을 곳이 못된다. 정신을 갉아먹는 장소다. 그리고 일단. 정신, 몸 그러면 마음까지 무너져내리니까. 몸은 병들어있고, 안아픈 사람이 없고. 그걸 뭘로 연명하냐면 주사로. (그 주사는 어떤 주사였어요.) 제 생각에는 항생제인 거 같아요. (몸이 아프니까 그걸로.) 그렇기도 하고 염증을. 항생제 많이 가다 보면 안 듣겠죠. 슈퍼 바이러스가 나오겠죠. 내가 딱 봤을 때는 정확히 확인은 안해봤지만은 항생젠거 같아요. 그거 아니면은 사람이 금방 아팠다가 그럴 수가 없어요. 주사 맞을 때마다 만원, 2만원 준다하더라고요.

비뇨기과에 가면 주사이모 오시잖아요. 그러니까 비뇨기과 그 안에 새마을 금고쪽 비뇨기과가 있는데, 내가 만약 복숭아 장의 302호라고 적고 가잖아요. 그럼 와서 놔 주고 가요. (그게 얼마였어요?) 기억이 잘 안나요. 3만 5천원이었던가? 그게 20대 때. 30대 때는 절대 안 맞죠. 그런데서 이제.

완월동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생각하라고 하면 흔히, 섬 같다(중략) 남포동과 자갈치 주변의 굉장히 번화한 도심 한 가운데 있으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그 많은 인파 속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거기는 하나의 어떤 음..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밖으로 함부로 발설하지 않은 어떤 그런 섬처럼 갇혀 있는 공간이고, 열려 있지만 갇혀 있는 공간인거죠. 그 갇혀 있는 공간에 여성들은 앉아있는데 굉장히 화려하고. 빛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 하나 들여다보게 되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죠.

나는 외출 자유로웠지. (처음부터?) 처음에 그 집에 들어갔는데 못 있겠더라고. 그래서 3일 만에 다시 왔어. 그래서 내가 쓰레기통을 비우겠다고 있으니까 거기 빨래하는 아줌마가 바깥에 내어 놓으면 비우겠다고 하니까, 내가 ‘왜요? 도망갈까봐요?’하니까 다음부터는 안 그러더라고. 맞잖아. 내가 빚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고. (아. 빚이 없으니까. 어쨌든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거네요.) 아가씨들이 빚이 있으니까. 하도 도망을 가니까. 옛날에는 잡아 와서 때리고 그랬거든. 우리는 그런가 모르지. 우리 윗세대들은 그랬다고 그러더라. 많이 그랬다고 하더라고. 도망가면 애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옛날에는. 지금은 도망가면 끝인데. 그래서 나중에 미스 방에서 애들 도망가는지 아닌지 지키고, 저녁에 장사하고 아침에 잠이 와서 죽겠는데.

예전에 내가 소개소를 타고 갔었는데 근데 이번에 이 가게에 2018년에 들어갈때는 그냥 갔거든요. 아니까, 사장. 예전 처음에 한 달 있다 갔거든요 소개소 타고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그 때 당시 선불이 있었어. 있었는데 (터치가) 너무 심하더라고. 선불금 있으니까. 좀 병원 가면 어디 병원 갈건데 갔다 몇 시에 들어올건데 확인 전화 이런 것도 하고. 딱 이번에 갔을 때는 딱 틀리더라고 선불금없이 드가니까. 터치하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대우가 완전 다르네요.) 좀 그랬었죠. (보통 외출은 한 몇 시부터 외출을 해요?) 우리가 보통 6시 퇴근이니까 우리 7시에 해가 6시 퇴근, 어쩔때는 5시 퇴근인데. 그라면 나는 9시에 병원가거나 뭐 볼일이 있으면 은행 가죠. 아니면 3시쯤 일어나갖고 씻고 준비하고 나가고 갔다 또 다시 나와서 샤워만 하고 이런 식이다 보니까.

저는 거의 다 밖에 보름 정도만 안보내주대. (중략) 그러고는 밖에 다녔어요. (중략) 그냥 뭐 굳이 뭐 돈 저거 한 것도 없었고 이러니까 친구가 처음에 아예 얘기했었고. "얘는 구속하면 안있는다."고 말했었고 그래서 전 자유로웠어요.

그때는 자유롭지는 않았는데 뭐라고 그럴까요. 우리가 조금 지나고 나서 친구들하고 또 옆에 있는 동생들이나 이런 애들이 굉장히 뭐라 그럴까. 적극적으로 많이 따른 편이었어요. 그런 쪽이 많이 몰래 못 가게 하는 걸 목욕탕에 몰래 옷 갖다 놓고 도망가서 놀다 오고 막 그러니.

거기 있다가 보면 그래도 옷장사들도 오고. 미용실에도 가다 보면 양품점도 있고. 잠옷 같은거. 우리가 외출은 안해도 옷 같은거 입고 싶잖아. 엄청 비싸도. 그 동네 엄청 비싸.

해볼 건 다 해봤어. 제비집도 가보고. 담배도 많이 피고. 나는 술은 못 먹었어. 술은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기 때문에. 아예 먹으면 숨넘어가고. 드링크도 못 마셔. 그 정도야. 알코올 성분 조금 있는 것도 안 돼. 체질적으로. 담배는 완전 많이 피웠어. 끊었어.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자는거. 다리 뻗고, 그러니깐 손님이, 손님 올까봐, 경찰 올까봐, 업주 올까봐, 욕 먹을까 봐 내가 늦잠 자서 또 돈 못 벌까 봐. 이런 거 없이 진짜 딱 하루만이라도 정말 그런 생각 하나도 안 하고. 그러니까 집에 있을 때도 일부러 오빠에게 안 맞으려고 자는 척하고. 그런 것들이 연결 선상에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냥 하루라도 제발 그냥 마음 편하게 잤으면 좋겠다. 아무 걱정안하고. 그거였던 것 같아. 그래서 나온 이유도 진짜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싶어서.

그런데 거기 안에서는 특별히 해소 할 방법이 없었어요. 내 같은 경우에는 해소라고 말하기는 뭐 하고 일단 그냥 애들이 있다 보니까 거기 이제 살아야 된다는 그거 밖에는 솔직히 다른 건 없었어요 내가 자유롭게 풍류를 즐긴다든가  이제 술 배워가지고 먹으러 다녔지.

하숙제였을 때는 아무래도 조금 더 자유로웠죠. 휴일 때 되면은 뭐 예를 들어서 친한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카페 같은 데도 가고 뭐 송도를 간다든지. 해운대를 가고 뭐 . 해운대로 피서 가고 그랬어요. 수영복 안에 입고. 옷 입고.

예를 들어서 손님이 없으면 손님을 못 받아서 한잔, 날씨가 궂으면 또 한잔. 술을 엄청 많이 마셨던 거 같아요. (중략) 술을 좋아하니까. 스트레스 쌓이고 그러고 하면. 그냥 제 수중에 돈이 있으면. 언니나 동생들하고 술을 마시다가도. 같이 술을 마셔도 왠지 모르게 풀지 못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가는거야. 딱히 하는것도 없는데 가서 술 마시고 그랬어요.

언니들이 생리할 때 생리할 때도 일을 한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저는 그게 진짜 그때 당시에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저한테는. 엄청 가슴 아프고 기억에 남거든요. 어떻게 생리할 때 일을 하지 상식적으로도 상상이 안됐죠. 황당하고 말이 안 되잖아요. 질 안에 솜 넣고 얼음찜질 시키고. 냉수마찰 시키고 그런 걸 하거든요 업주들이. 그러니까 나까이가 시키는 거죠. 생리하면 일주일이잖아. 거의 일주일동안 일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얼마나 막대한 자기들한테 손해가 됩니까. 그러면 언니들을 해야죠. 돈 벌어줘야 되니까. 아니 일 안하면 하루에 벌금 엄청나거든요. 하루 못하면 다 자기 빚으로 쌓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언니들 빚이 또 되니까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20대 초반에 갔을 때는 한 달에 한 4번 놀기도 힘들었거든요. 생리할 때도 막 솜 끼고 하고 이러고 일을 했는데, 30대 초반에 갔을 때는 거기가 많이 변했더라고요. 쉬는 것도 내가 자유롭게, 생리한다고 하면 쉬게 해주고.

진짜 힘들었던 게 생리 중에 여기는 체크라는 자체가 없는 거예요. 나는 생리 기간도 길고 생리혈도 많은데 이게 너무 그래. 안에 있는 여성들끼리 사실은 생리 중에 이렇게  솜을 막고 관계를 하는데 관계를 하다가 보면 이게 솜이 안으로 쑥 밀려 들어갈 때가 있어. 그러면 그거를 같이 있는 애들끼리 이제 올라가 가지고 그걸 빼주고 이렇게 한단 말이야. 나는 거기에 진짜 충격을 받아가지고 처음에. (중략) 나도 다리 벌리고 누워 있는다고 생각을 하니까 이게 너무. 그게 진짜 충격 아닌 충격으로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니까 트라우마로 딱 오는 거예요. 그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일상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