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막 학생들 지나다니고 하면 막 잡고 이랬거든. 그런 게 많아서 좀 불편한 게 있었지. 그 당시에는 활성화 되면서 밑에 이쪽으로도 더 많았었거든. 학교 가면 아이들이 니 완월동 사나 하면서 이런 말을 할 때는 우리 아들이 억수로 안 좋다고 내 보고. 우리 아들은 지금까지 하는 게 왜 엄마는 하필 이 동네와 살았냐고 이 말을 해. (...) 제일 힘든 건 우리 아이가 어디 다니면 니 완월동 좋은 동네 사네 이런 말 하는 게 애가 스트레스 받아갖고. 엄마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충무동이다. 충무동에서 오래 살다 보니까 내가 이래이래 됐다 이렇게 말을 하고.

..섬과 육지. 완월동은 그 사이. 경계에 있는 것 같아. 여기서 가면 섬으로 가고. 육지의 끝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여기서 가면.

솔직히 이거는 한국이 갖고 있는 문제예요. 일제 잔재고 근데 뭐 물론 이제 없앨 수도 있죠. 근데 그 이후에 우리가 6.25도 겪으면서 또 다시 활용을 하는 되풀이를 했었고. (...) 저 같은 경우도 부채의식은 있고 책임감도 느껴지거든요.

나, 우리 모두의 아픈 공간? 특히 남성들은 돌아보기(성찰하기) 싫어하는 공간?성착취의공간? 트라우마의 공간?외면하고 싶은 공간. 이런 거 아닐까요? 외면하고 그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공간. 근데 일부 남자들한테는 자기들끼리의 유희의 공간.

관광 명소죠. 최대의 관광지죠. 그리고 이게 여성분을 또 아는 분들도 하나의 관광지처럼. 어 그런 곳이 있대. 한번 가볼까. 이런 식으로.

부산에서의 완월동은 뭐랄까 배타는 선원들이 주로 가고 그러니까 배가 들어오고 하면 처갓집 간다 하니까는. 완월동은 남자들의 처가 동네라 할까. 그 정도로 남자들의 뭐 자기들의 꿈을 꿈이랄까 뭐랄까. 한 번 욕망. 그런 거죠. 젊은 아들 군대가기 전에 우리 저기 가서 한 번 갔다 가자 이래가지고 여기 와 가지고 첫 경험 하고 가자 하고.

처음에 우리 왔을 때 시간에 만 원, 삼만 원 그랬다고. 잠자는 거 삼만 원, 오만 원. 제일장에서는 십만 원인가 그랬다고 하더라고. 나는 오만 원 받았어. 그러고 나서 제일장에 불이 크게 났어. 아가씨인가 손님인가 죽었어. 그때 난리 났었다. 그래서 다 수리하고 했잖아.

그때가 1970년도 그리고 또 완월동 이쪽도 보면 전부 목조 건물이였어요. 내 어릴 때 아마 이게 큰 불이 났을 거야. 예전에 어릴 때 하여튼 큰 불이 나서 그때 이후로 이게 전부 다 이제 건물이 콘크리트 건물로 해가 다 지은 걸로 알고 있어요.

70년대 그렇게 호황기는 아닌데 심각한 거는 처음에는 이쪽만 이렇게 중고등학교 때는 이쪽만 있다가 어느 순간인가 이게 도로를 중심으로 길 건너편에 널려있다가 지금 완전히 죽었잖아요.  안쪽에만 있다가 길가도 하기 시작을 했고요. 길가 입구도 하기 시작했고 심할 때는 이제 길 건너 편에 주택도 아줌마들이 전부 서서 거기 이제 분홍색 불 켜놓고 해서 그 정도로 많이 확산이 됐어요. 그게 80년도쯤 되지 않을까 싶은.

어렸을 때 풍경은 우리가 지나다니면서 보면은 그때만 해도 판자촌 집이 많았어요. 판자촌 집 입구에 여자들이 나와서 앉아 있고 그럴 때 지나가다 보면은 우물물 떠가지고 목욕하는 그런 모습도 보고 밖에서 그냥 보이게....

우리도 길을 건너 다녔어요.  (중략) 나는 내 같은 경우는 피했다. 내가 이렇게 이제 좀 그래갖고 .....우리 남편은 이쪽으로 다녀도 큰 길로 와도 이제 누가 막 잡는가 봐 .... 남자들은 혼자 다니는 게 좀 그렇고.진짜 휘황찬란했어요. 그때 80년대.

사라진 풍경이 뭐 완월동 이쪽으로는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그대로 있고요.(중략) 뭐 다 재래시장도 그대로고 공동어시장도 아직 그대로고 크게 뭐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저 동네가 일제시대에 생겼잖아요. (…) 일제 잔재의 의미, 민족을 지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공간. 거기서 가장 좋은 컨셉이 여성이었고, 그래서 여성을 통해서 한국을 지배했던 공간. 그래서 마음껏 조롱했던 공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봐요.

완월동을 통해서 하나의 성을 바라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도 접근해도 시대별로 완월동을 바라보는 걸 끊어서 이를 해보면.

부산 지역에 근현대사가 다 담겨 있는 공간. 여성의 근현대사. 여성 폭력의 근현대사라고 해야 되나.

공동어시장하고 완월동은 부산을 먹여 살린 거 아닌가? 나는 그렇다고 보는데. 현찰이 제일 많은 곳이 완월동 아니었나?

완월동이 부산에서 굉장히 고립된 곳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폐쇄적이고, 지금도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곳.

부산에서 완월동은 사람들에게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곳이고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곳이고,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고 그런 곳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