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때는 뻑비가 내가 있을 때 2002 그때 당시에 한 50, 50에서 이제 작게 뭐 시간 거의 다 돼 가지고 새벽에 막 올라가면 막 10만 원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10에서 한 50 정도. 초저녁부터 하루 종일 안 나오고 주말 이럴 때는 한 50만 원 정도 뻑비 올라가고 아니면 한 30. 평균적으로 조금 그거 하면 이제 시간이 이 밤에 한 12시 전으로 해가면 한 30만 원 정도 하면 하루 종일 안 나오면 50만원. 주말이나 이럴 때 바쁠 때 안 놓으면 한 50만 원.

예를 들어 500이면 50 나까이 이모 가고 450에서 주인하고 나하고 반반 그러면 주인이 그때 35만 원인가 45만 원 방세 땠던 거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반땅. 97년도 그때.

응, 그래서 그때 그 집이 방값이 200만 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방값 이미 뭐 방값 200만원인 거 알고 반땡이 200만 원이고 그래서 그때 내가 빚이 한 2천인가 그 정도 있었는데. 내가 1천만 원 벌어도 500이 떼어지면 300에다가 또 뭐 이자 뛰고. 방비 이거 주는 거 다 떼고 이러면 진짜 마이너스야. 그러니까 [주인] 마음이야 자기 마음. 기분 좋으면은 마이너스 안 쳐주고. 기분 나쁘면 마이너스 쳐버리고. 그러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미스방에는 연탄난로 때웠다. 그러면 진짜 춥다. 방안에 인자 난로를 놔가지고 기름 사다가 넣어야 하고. (그것도 본인 돈으로 넣어야해요?) 아가씨 돈으로.

2018년 8월 말일에 들어갔는데 근데 빚진 것 일단 없이 다행이지만 내 나올 때 손에 들고 나온 돈이 없으니까. 그게 좀 허무하더라고. 내가 이렇게 벌어서 뭐했지. 그다지 한 것도 없는데. 왜냐하면 거기서 쓸 것, 물티슈, 콘돔, 젤 다 우리 돈으로 사야되니까. 그런 거 사니까 또 비싼거예요. 인터넷 시키면. 또 일하다보면 공금 걷지. 손님 줄 음료수 뭐, 휴지 그런 식이죠. 근데 그런 것도 이해못하겠고. 우리가 번 거에서 나까이에게 떼 주고. (...) 와리라는 게 우리가 손님 받으면 떼주는 금액이 7천원인가 떼요. 한 손님에. 우리 가게 같은 경우에. 딴 데는 만원 떼는데 있다더라고. 우리 같은 경우는 7천원 뗀다고. 나까이 떼주거든요. 한 손님한테. (...) 우리가 일마치고 사 먹고 담배 피고 술먹고 내 방에 음료수, 물 이런거 다 하니까 남는 게 없는거야. 돈 벌어서. 그러니까 그게 허무하더라, 정말.

내가 막판에 그만두고 나왔고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장부가 있는 거예요. 내가 가격을 썼던 게. 왜 주인은 별로 한 게 없는데 왜 6:4, 7:3으로 지가 더 많이 갖고 가지? 우리는 우리 몸을 다 버려가면서 일을 하는데 왜 저거가 뭔데 가게 빌려줬다는 그거로? 전기세 이런 거 어차피 우리돈에서 나가는건데 왜 그걸 받는지 못마땅해서  솔직히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고. 솔직히 까놓고. 지금은 또 바뀌었더라고요. (어떻게 바뀌었어요?) 우리가 3, 4먹고요, 6먹고요. 지금은 아가씨 6으로 해주고, 어이가. (중략) 5:5 같으면 완전 호리호리하고 완전 1등급 돈 버는 아가씨들. (외모에 따라서 나뉘네요, 그것도.) 그러니까.

그때는 계산을 하잖아요. 그럼 돈을 줬어. 만약 내가 400 벌었다 그럼 현관 이모한테 1할, 40만원 떼잖아. 그 후에 반반해서. 그때는 우리가 방세를 냈어. 방세가 100이면 100. 200이면 200. 수입의 절반, 한 40% 정도 나가고. 우리가 현관 언니한테 주는걸. 와리라고 했거든 와리 다 내고. 식비 다 내고. 그 남는 돈이 내가 버는 돈이야. 만약에 내 수입이 500이었다, 그럼 다 나가는 돈이 다 제 보면 3-400 넘을 때도 있고 그래도 내가 남는 건 10%나 20%. 그게 결국 내 용돈이야. 용돈 가지고 화장품도 사야하고 미장원도 가야하고. 미장원 갈 때도 사람 다 따라 다니고 그랬거든. 이 모자라는 돈을 가지고 내가 옷을 사고 싶다고 하면 또 돈을 당겨쓰고. 또 그게 빚으로 올라 가는 거야. 거기서 빚을 더 안지고 그럼 다행인데. ...

나는 7대 3 그 정도. (7대 3이면 너무 돈을 적게 받는 거잖아요.) 말을 못 하는 거야. 알면서도 그렇게 받고.

지금은 반땅이지만, 옛날에는 반땅 말고 뭐라고 해야 하나. 물품도 우리가 사서 꾸며 놔야 하고, 자체 물건 쓰면 물건 값도 줘야 하고. 한 달에 방세가 30만 원에 밥값 20만 원에.

부산과 마산은 나까이 비가 있죠. (…) 10프로. 내가 1000만 원 벌면 100만 원. 주인이랑 내가 50만 원 50만 원씩 해가지고. (그때 5:5로 계산하셨어요?) 네 5:5. (중략) 소개소를 안타면 6대 4까지는 되죠. 소개소를 타면 다 똑같이 5대 5.

내가 생각해도 그때 사람(업주)이 참 좋았던 건 같아. 계산도 뭐 한 달 깔아놓고 두 달 만에 한 번씩 해줬나. 그런데 그것도 뭐 싹 딱 다 그대로. 얘기 다 해주대. 이렇게 해서 이렇게 벌고 이렇게 했으면 요만치 떼고 뭐.

반땅을 해놓고도 또 뭐 과외로 뭘 뗀다는 소리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반땅이라는 거는 내가 알기로는 나까이 그 와리 빼고서는 똑같이 나눠야 되는 게 반땅이에요. 그쵸 근데 더 이상을 요구 안 해야 되죠 그러니까 더 이상 요구하고. 내가 듣기로는 뭐 예를 들어서 한 달에 한 세 번까지 쉬는 거 허락한다면. 더 쉬면은 뭐 지네가 돈을 얼마를 물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서.

우리 가게는 나까이말고는 그렇게 심하게 그런 건 없는데 다른 가게 같은 경우에는 주인부터 나까이까지 해가지고 잔소리가 장난.  숙소에 있으면서 구속. 거의 어디 나가면 말을 다 하고 허락 다 받고 나가고. 우리 같은 경우에는 나는 그런 건 없었으니까. 근데 다른 가게 같은 경우에는 좀 그런 게 있더라고요. 터치가 장난 아닌. (...) 예전 같은 경우에는 진짜 못하면 업주가 아가씨들 그냥 쥐어박고 그런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데서 일하는 꼬라지를 못보거든요. 내가 그랬으면 나는 같이 싸웠을 걸요. 일 안하는 일이 있어도. 나는 그런 꼴을 내가 왜 맞고 살아야되노. 돈 벌어주고 왜 맞고 살아야하냐.

완월동이 어찌 보면, 옛날에는 아주 무서운 집도 있었고, 이렇게 단계별로 A, B, C 나눠보면, A쪽은 아무래도 정말 어린애들 있었거든요. 요 위에가 어린애들이 많았어요. 민자(미성년자)들도 많았고, 인신매매해서 감금한 데도 많았고. 근데 나는 다행히 이쪽 편에 있었거든요.

아파도 진통제를 먹여서 바로 일하게끔 했고, 애를 가졌을 때도 애 뗀날 하루만 쉬게 하고, 그 다음날부터는 바로 일을 하게 했어요. 그 집에서 애를 3번 떼고 4년 정도 있었는데 밖에 못나오고 갇힌 게 3년 정도될 거예요. 하지만 거기서 내가 돈을 가지고 나온 건 마이너스 였어요. 단속이 나온다고 해도 그 때 당시에는 경찰이 완월동 편이였어요. 너무 아파서 일을 못하겠을 때에는 거기에 삼촌이랑 같이 가서 흥분제 같은 걸 먹여서 아픔을 덜하게끔 해서 일하고 그렇게 생활을 3년을 넘게 했어요.

그 애는 나한테 그러려고 그런건 아니지만. 알고 있어. 나와 같이 나갔다가 도망가면 내가 빚을 안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기가 절박하니까 그렇게 나갔어.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내가 와서 맨 처음 그 기분. 난감하잖아. 죽을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데 일을 해야 하고. 그 [도망간 아가씨] 마음을 아는데, 오죽 했으면. 일을 해야 내가 편하고 살 수 있는 거야. 결론적으로.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렇게 피해본 애들이 많아. (...) 오래된 애들 심는 거라. 책임지고 데리고 갔다 온나. 내가 그랬듯이, 처음에. 네가 책임지고. 안 그러면 낮에 현관에 지키고 있으니까 나 혼자는 못나가. 안 그러면 따라가고 언니들하고 같이 가고 그러니까. 나도 다 겪었던 일이니까. 그때(처음에) 나한테도 그랬어. 오래된. 같이 겪고 했던 일이니까. 니가 같이 데리고 갔다 온나. 그러면 나는 착하게 갔다 오고. ..

(언니들 얘기를 들어보면 언니들도 남포동으로 엄청 쇼핑 많이 갔다고.) 어 많이 갔지. 그때 당시는 저거 혼자서도 못 다니고 나가면은 누가 따라 가고 목욕도 오면은 딱 몇 년 전까지만 해도주인들 따라다니고 그랬어요. 요즘은 이제 좀 많이 그나마 아이들을 신임을 하고 하니까 좀. (그러면 양장점에 오시는 언니들 중에서도 거의 혼자 못 왔겠네요?) 그러니까 그건 나까이들이 데리고 오는 아이 인자. 혼자 오는 아는 이제 그 집에 오래 있어가지고 진짜 신임 있고 한 아이들은 혼자서 오지. 온지 얼마 안 돼, 그 전부 돈을 주고 몇 천만원 주고 데리고 오잖아. 그러니까 나까이들이 도망갈까 싶어서 다 데리고 오고 그러면 우리는 나까이가 보증서가 옷 해주고 그런 식으로 했거든.

이게 이제 옛날에는 이런 게 있었잖아 이 동네가 옛날에 어떤 동네였었냐면은, 가둬놓는. 이 철문을 잠궈놓고 가둬놓잖아, 사람을 못 나가게.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고 삐삐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잖아. 사람을 가둬놓은 거라 감시하고 빠져나오고 싶어도 못 빠져나오는. 이 완월동이 그랬었어요.

애들하고 같이 가면은 그냥 목욕하고 나오는 거지. 그러면 현관 낮에는 낮에 현관 보는 사람. 옛날에는 할머니도 있고 또 젊은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은 대기실에 딱 기다리고 있잖아. (대기실에서 기다려요? 현관이모가 따라갔는데. 감시를 한다고.) 목욕을 다 하고 나면은  사물함 열쇠 받아서 옷입고 또 따라 올라가고.......

미용실 세탁소 전부 완월동안에 다 있었어요. 그리고 쉬는 시간이라도 낮에 손님이 오면 손님을 받아야 해요. 방에 인터폰이 와요. 아니면 자고 있는데 나까이가 손님을 방으로 데리고와서 손님받으라고. 나는 그게 제일 싫었어요. 자고 있는데. (그 안에 있으면서 불안했거나 불편했던 점은 뭐가 있었어요?) 불편했던거는 자유롭지 못한거지. 감시같은거. 도망을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잡으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