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목소리들
2014년과 2020년 이루어진 언니들의 구술 인터뷰 자료와 2021년 활동가 및 완월동 인근 주민들의 구술 자료를 분류 및 분석하여 다양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이 인식하는 완월동 공간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완월동의 내부와 외부, 일상화된 착취 구조, 공간과 사람들,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 사람(업주)이 참 좋았던 건 같아. 계산도 뭐 한 달 깔아놓고 두 달 만에 한 번씩 해줬나. 그런데 그것도 뭐 싹 딱 다 그대로. 얘기 다 해주대. 이렇게 해서 이렇게 벌고 이렇게 했으면 요만치 떼고 뭐.
반땅을 해놓고도 또 뭐 과외로 뭘 뗀다는 소리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반땅이라는 거는 내가 알기로는 나까이 그 와리 빼고서는 똑같이 나눠야 되는 게 반땅이에요. 그쵸 근데 더 이상을 요구 안 해야 되죠 그러니까 더 이상 요구하고. 내가 듣기로는 뭐 예를 들어서 한 달에 한 세 번까지 쉬는 거 허락한다면. 더 쉬면은 뭐 지네가 돈을 얼마를 물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서.
우리 가게는 나까이말고는 그렇게 심하게 그런 건 없는데 다른 가게 같은 경우에는 주인부터 나까이까지 해가지고 잔소리가 장난. 숙소에 있으면서 구속. 거의 어디 나가면 말을 다 하고 허락 다 받고 나가고. 우리 같은 경우에는 나는 그런 건 없었으니까. 근데 다른 가게 같은 경우에는 좀 그런 게 있더라고요. 터치가 장난 아닌. (...) 예전 같은 경우에는 진짜 못하면 업주가 아가씨들 그냥 쥐어박고 그런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데서 일하는 꼬라지를 못보거든요. 내가 그랬으면 나는 같이 싸웠을 걸요. 일 안하는 일이 있어도. 나는 그런 꼴을 내가 왜 맞고 살아야되노. 돈 벌어주고 왜 맞고 살아야하냐.
완월동이 어찌 보면, 옛날에는 아주 무서운 집도 있었고, 이렇게 단계별로 A, B, C 나눠보면, A쪽은 아무래도 정말 어린애들 있었거든요. 요 위에가 어린애들이 많았어요. 민자(미성년자)들도 많았고, 인신매매해서 감금한 데도 많았고. 근데 나는 다행히 이쪽 편에 있었거든요.
아파도 진통제를 먹여서 바로 일하게끔 했고, 애를 가졌을 때도 애 뗀날 하루만 쉬게 하고, 그 다음날부터는 바로 일을 하게 했어요. 그 집에서 애를 3번 떼고 4년 정도 있었는데 밖에 못나오고 갇힌 게 3년 정도될 거예요. 하지만 거기서 내가 돈을 가지고 나온 건 마이너스 였어요. 단속이 나온다고 해도 그 때 당시에는 경찰이 완월동 편이였어요. 너무 아파서 일을 못하겠을 때에는 거기에 삼촌이랑 같이 가서 흥분제 같은 걸 먹여서 아픔을 덜하게끔 해서 일하고 그렇게 생활을 3년을 넘게 했어요.
그 애는 나한테 그러려고 그런건 아니지만. 알고 있어. 나와 같이 나갔다가 도망가면 내가 빚을 안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기가 절박하니까 그렇게 나갔어. 그래서 내가 생각했지. 내가 와서 맨 처음 그 기분. 난감하잖아. 죽을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데 일을 해야 하고. 그 [도망간 아가씨] 마음을 아는데, 오죽 했으면. 일을 해야 내가 편하고 살 수 있는 거야. 결론적으로.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렇게 피해본 애들이 많아. (...) 오래된 애들 심는 거라. 책임지고 데리고 갔다 온나. 내가 그랬듯이, 처음에. 네가 책임지고. 안 그러면 낮에 현관에 지키고 있으니까 나 혼자는 못나가. 안 그러면 따라가고 언니들하고 같이 가고 그러니까. 나도 다 겪었던 일이니까. 그때(처음에) 나한테도 그랬어. 오래된. 같이 겪고 했던 일이니까. 니가 같이 데리고 갔다 온나. 그러면 나는 착하게 갔다 오고. ..
(언니들 얘기를 들어보면 언니들도 남포동으로 엄청 쇼핑 많이 갔다고.) 어 많이 갔지. 그때 당시는 저거 혼자서도 못 다니고 나가면은 누가 따라 가고 목욕도 오면은 딱 몇 년 전까지만 해도주인들 따라다니고 그랬어요. 요즘은 이제 좀 많이 그나마 아이들을 신임을 하고 하니까 좀. (그러면 양장점에 오시는 언니들 중에서도 거의 혼자 못 왔겠네요?) 그러니까 그건 나까이들이 데리고 오는 아이 인자. 혼자 오는 아는 이제 그 집에 오래 있어가지고 진짜 신임 있고 한 아이들은 혼자서 오지. 온지 얼마 안 돼, 그 전부 돈을 주고 몇 천만원 주고 데리고 오잖아. 그러니까 나까이들이 도망갈까 싶어서 다 데리고 오고 그러면 우리는 나까이가 보증서가 옷 해주고 그런 식으로 했거든.
이게 이제 옛날에는 이런 게 있었잖아 이 동네가 옛날에 어떤 동네였었냐면은, 가둬놓는. 이 철문을 잠궈놓고 가둬놓잖아, 사람을 못 나가게.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고 삐삐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잖아. 사람을 가둬놓은 거라 감시하고 빠져나오고 싶어도 못 빠져나오는. 이 완월동이 그랬었어요.
애들하고 같이 가면은 그냥 목욕하고 나오는 거지. 그러면 현관 낮에는 낮에 현관 보는 사람. 옛날에는 할머니도 있고 또 젊은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은 대기실에 딱 기다리고 있잖아. (대기실에서 기다려요? 현관이모가 따라갔는데. 감시를 한다고.) 목욕을 다 하고 나면은 사물함 열쇠 받아서 옷입고 또 따라 올라가고.......
미용실 세탁소 전부 완월동안에 다 있었어요. 그리고 쉬는 시간이라도 낮에 손님이 오면 손님을 받아야 해요. 방에 인터폰이 와요. 아니면 자고 있는데 나까이가 손님을 방으로 데리고와서 손님받으라고. 나는 그게 제일 싫었어요. 자고 있는데. (그 안에 있으면서 불안했거나 불편했던 점은 뭐가 있었어요?) 불편했던거는 자유롭지 못한거지. 감시같은거. 도망을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잡으러 와.
주위 사람들 목욕탕 가는데 따라 가거나 어디 시내에 뭐 사러갈 때 따라가고 그런 적은 있었죠. 제 옆의 동료들. 저는 [감시가] 없죠. 빚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선불금이 많아서 그렇다고. 나도 선불금이 그 당시에 적은 건 아니었는데. 내가 처음에 내가 조건을 그렇게 걸어서. 한번 집에 보내줬는데 약속을 어기고 없어지고 그랬으면 나도 그렇게 했겠죠. 그래도 약속을 잘 지키고 하니까 믿으니까 그렇게 했겠죠.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뭐 행운아였다 하지만 그래도 24시간은 항상 대기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고 그러면 사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수면제 없이는 자기 힘든 상황인 거고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또 다시 깼다 자다가를 반복해야 되는 상황이잖아. 점점 약이 독해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리고 제가 병원을 갈려고 하면 꼭 완월동 안에 주사이모한테 주사를 맞으라고 해요. 저는 병원을 가야겠는데, 병원 가는 것을 거부해요. 어떻게든 가게에 있어야 일을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주사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 안에 약이 뭐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주사이모? 맞았어요. 솔직히 내 마음대로 가는 거니까. 좀 이용을 했죠. 왜,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으니까. 보험 같은 것도 있잖아요. 내가 뭐 이런데 안 좋으면, 또 어떻게 보면 병원에 가면, 날벼락 소리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게 두려운 것도 있고. (음, 그걸 들을까봐? 두렵구나.) 두 가지가 있잖아요. 또 병원 기록에 너무 안 좋은 게 남으면, 보험혜택 받는 것도 그렇고, 그때는 참 무서웠어요. 그때는. (어떤 주사였어요?) 물어보면 이제 증세가 어떻대 하면 놔주거든요. 그 주사를, 엉덩이 주사. 피곤하면 ‘링거 놔 주세요’하면. 그니까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야매지만 간호사 출신이라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믿죠. 안 믿으면 못 맞잖아요. (그거 맞으면 몸이 조금 회복은 됐어요?)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제 우리가 받는 손님에 따라서 증세가 빨리 악화가 되니까. 솔직히 일주일동안 안 하고 푹 쉬어야 되는데, 그렇게 쉴 그게 안 되지. (중략) 믿어요. 안 믿으면 열 받아서 안 되니까, 부작용 나니까. 믿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는 말을 그렇게 하기도 그러니까. 저는 딱 2년간을 저동네에 있으면서 저기는 있을 곳이 못된다. 정신을 갉아먹는 장소다. 그리고 일단. 정신, 몸 그러면 마음까지 무너져내리니까. 몸은 병들어있고, 안아픈 사람이 없고. 그걸 뭘로 연명하냐면 주사로. (그 주사는 어떤 주사였어요.) 제 생각에는 항생제인 거 같아요. (몸이 아프니까 그걸로.) 그렇기도 하고 염증을. 항생제 많이 가다 보면 안 듣겠죠. 슈퍼 바이러스가 나오겠죠. 내가 딱 봤을 때는 정확히 확인은 안해봤지만은 항생젠거 같아요. 그거 아니면은 사람이 금방 아팠다가 그럴 수가 없어요. 주사 맞을 때마다 만원, 2만원 준다하더라고요.
비뇨기과에 가면 주사이모 오시잖아요. 그러니까 비뇨기과 그 안에 새마을 금고쪽 비뇨기과가 있는데, 내가 만약 복숭아 장의 302호라고 적고 가잖아요. 그럼 와서 놔 주고 가요. (그게 얼마였어요?) 기억이 잘 안나요. 3만 5천원이었던가? 그게 20대 때. 30대 때는 절대 안 맞죠. 그런데서 이제.
완월동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생각하라고 하면 흔히, 섬 같다(중략) 남포동과 자갈치 주변의 굉장히 번화한 도심 한 가운데 있으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그 많은 인파 속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거기는 하나의 어떤 음..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밖으로 함부로 발설하지 않은 어떤 그런 섬처럼 갇혀 있는 공간이고, 열려 있지만 갇혀 있는 공간인거죠. 그 갇혀 있는 공간에 여성들은 앉아있는데 굉장히 화려하고. 빛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 하나 들여다보게 되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죠.
나는 외출 자유로웠지. (처음부터?) 처음에 그 집에 들어갔는데 못 있겠더라고. 그래서 3일 만에 다시 왔어. 그래서 내가 쓰레기통을 비우겠다고 있으니까 거기 빨래하는 아줌마가 바깥에 내어 놓으면 비우겠다고 하니까, 내가 ‘왜요? 도망갈까봐요?’하니까 다음부터는 안 그러더라고. 맞잖아. 내가 빚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고. (아. 빚이 없으니까. 어쨌든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거네요.) 아가씨들이 빚이 있으니까. 하도 도망을 가니까. 옛날에는 잡아 와서 때리고 그랬거든. 우리는 그런가 모르지. 우리 윗세대들은 그랬다고 그러더라. 많이 그랬다고 하더라고. 도망가면 애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옛날에는. 지금은 도망가면 끝인데. 그래서 나중에 미스 방에서 애들 도망가는지 아닌지 지키고, 저녁에 장사하고 아침에 잠이 와서 죽겠는데.
예전에 내가 소개소를 타고 갔었는데 근데 이번에 이 가게에 2018년에 들어갈때는 그냥 갔거든요. 아니까, 사장. 예전 처음에 한 달 있다 갔거든요 소개소 타고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그 때 당시 선불이 있었어. 있었는데 (터치가) 너무 심하더라고. 선불금 있으니까. 좀 병원 가면 어디 병원 갈건데 갔다 몇 시에 들어올건데 확인 전화 이런 것도 하고. 딱 이번에 갔을 때는 딱 틀리더라고 선불금없이 드가니까. 터치하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대우가 완전 다르네요.) 좀 그랬었죠. (보통 외출은 한 몇 시부터 외출을 해요?) 우리가 보통 6시 퇴근이니까 우리 7시에 해가 6시 퇴근, 어쩔때는 5시 퇴근인데. 그라면 나는 9시에 병원가거나 뭐 볼일이 있으면 은행 가죠. 아니면 3시쯤 일어나갖고 씻고 준비하고 나가고 갔다 또 다시 나와서 샤워만 하고 이런 식이다 보니까.
저는 거의 다 밖에 보름 정도만 안보내주대. (중략) 그러고는 밖에 다녔어요. (중략) 그냥 뭐 굳이 뭐 돈 저거 한 것도 없었고 이러니까 친구가 처음에 아예 얘기했었고. "얘는 구속하면 안있는다."고 말했었고 그래서 전 자유로웠어요.